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8) 3.유배와 망국, 목은 이색의 장단음(長湍吟) ② 고려의 운명과 함께 한 아버지와 아들
수정 : 2019-11-18 06:28:27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8)
3.유배와 망국, 목은 이색의 장단음(長湍吟) ② 고려의 운명과 함께 한 아버지와 아들
이색의 유배는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다. 그가 쓸쓸히 장단유배 길에 나선 바로 다음날 아들 이종학도 유배 길에 오른다. 유배지는 남쪽 바닷가 순천이었다.
“필마로 관도를 향하는데/ 추운 겨울이라 눈이 내리려 하네./ 어버이 생각은 한층 간절해지고/ 개경을 떠나자니 발걸음이 오히려 더디네./ 내쫓기는 신세는 운수가 사나운 탓/ 중얼대노라니 시 한 수가 이루어졌네./ 개경의 송악산이 점점 멀어져 가니/ 물어나 보세, 어디로 향해 가는지.(이종학. 「임진도중」)”
▲ 송악산은 멀어지고 마음은 갈피를 잃는다
이종학은 도성을 나와 임진강을 향한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함께 탄핵된 아버지를 생각한다. 송악산이 멀어져 가고 마음은 갈피를 잃는다. 눈 쌓인 청교를 지난다. 개성팔경이 노래한 ‘청교송객’의 현장이다. 저물녘 유배자는 형제들과 이별주를 나누며 아득한 귀양살이를 슬퍼한다. 송악산을 등지고 임진강을 건넌다는 것. 오늘 이종학이 마주한 임진강은 어제의 임진강이 아니다.
진퇴의 심정에 따라 같은 곳도 전혀 달리 느껴지는 모양이다. 1년 뒤 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청교에 모습을 드러낸다. 유배에서 돌아와 막 강원도 여행을 떠나는 중이었다.
“풀 우거진 펀펀한 들녘엔 새싹이 돋아나고/ 구름 깔린 먼 산은 맑게 갰네./ 훈훈한 바람이 말을 스쳐 지나가고/ 더딘 해는 사람을 환히 비추네./ 흥이 솟아남을 그 누가 알겠는가./ 어느새 새로운 시가 이루어졌네.(이종학. 「청교도중」)”
하필이면 봄이다. 눈 대신에 새싹이 돋고, 산은 멀지만 맑기만 하다. 지는 해는 더뎌서 환히 비추고, 불안 대신 흥이 솟는다. 같은 길이지만 유배자의 길과 여행자의 길이 이렇게 다르다.
이종학은 한 달 가량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유배가 풀려 장단에 머물던 아버지 이색을 찾는다. 거기서 보름을 머문다. 부자상봉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색은 다시 탄핵되어 함창으로 유배되고, 이종학도 진천으로 유배된다. 이렇게 진퇴를 되풀이 하던 부자에게 1392년 4월 4일 운명의 사건이 벌어진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된다. 이 사건은 고려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임과 동시에 정몽주와 한 묶음이었던 이색 부자의 운명을 결정한 사건이었다. 이색은 금주(서울시 금천구 일대)와 여주를 거쳐 장흥(전라도)으로, 이종학은 함창으로 또 유배된다. 그리고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이종학은 장사현(전북 고창군)으로 이배되던 중 거창의 무촌역에서 피살된다.
▲ 유배자가 되어 임진강을 향하는 길
죽기전 4년간 눈물도 글도 그쳐
어느 날인가 이색은 짬을 내 산놀이를 떠난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마침내 인적이 없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통곡한다. 해가 다해 어두워지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풀지 못했던 이색은 아무도 모를 곳에 이르러서야 막힌 감정을 풀어냈다. 이색은 자식만 생각하고 운 것일까? 거기엔 정몽주도 들어있고, 고려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눈물을 쏟고 돌아온다.
그날 이후 그친 것은 눈물만이 아니었다. 글도 쓰지 않았다. 귀양지를 떠돌면서도 놓지 않던 붓이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 죽음이 이르기까지 4년간 그는 단 한편의 글을 남기지 않는다. 후세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시대를 도모하는 기개는 없었지만 세태에 굽히지는 않았다.”
그가 마지막 남긴 글은 이렇다.
“무엇을 한탄하랴 운명인 것을. 나는 이제 자유롭게 되었도다.”
임진강에는 비탄의 울음도, 환희의 눈물도 보태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새로운 나라는 임진강을 건너 한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재석 /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저자
#108호
▲ 이종학의 인재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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